요트란 무엇인가 혹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 대한 오마주/김미영 칼럼니스트

김미영 칼럼니스트l승인2020.10.09l수정2020.10.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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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이일병씨 뉴스를 접한 우리 부부의 첫 반응은 이렇다.

남편(남자) - 그 부부 사이가 안 좋은가봐?

나(여자) - 마누라 입장을 그렇게 개무시하다니 나쁜 사람일세.

▲ 김미영 칼럼니스트  

부부 사이가 좋건 나쁘건 각 방을 쓰던 각 집을 쓰던 내 알 바 아니지만 외교부장관 씩이나 하면서도 공개적인 망신과 곤욕에는 빠뜨리지 않는 정도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구나 싶어 울컥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무능한 남편 대신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여자는 의외로 많다. 그들이 돈 벌어다 가족 먹여 살린다고 떵떵거리며 살까? 별로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돈 버는 아내는 돈 못 버는 남편의 울화와 자괴감과 콤플렉스까지 챙겨 모셔야 한다.

<신박한 정리> 최근 편을 봤다. 집정리 의뢰인 유재환은 엄마랑 둘이 산다. 어렵사리 처음으로 한마디 한 것을 보아 그의 아버지는 폭력 아버지, 폭력 남편이었나보다. 그가 퇴근해서 벨을 누르면 가슴이 떨렸다고, 어머니건 자기건 벨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지금도(아직까지도!) 자기네 벨소리 다 죽여 놨다고.

언제 두 모자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누렸는지 나오지 않지만 꽤 일찍부터 그의 어머니는 일을 하셨다. 여자 혼자 벌어 자식 고생시키지 않고 키웠다고 (꽤 넓은 아파트로 미루어 보아) 자부할 만 하지 않은가.

밖으로 나돌아 버릇 나빠진 마누라 가르친다고 나댈 남편도 없는데 내면화된 엄마-아내의 윤리는 미안한 마음을 만들어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밥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아빠의 부재로 상처 받을까 전전긍긍 미안하다.

하여 당신 입으로 한 집의 중심, 어른이 차지하는 곳이라 표현한 안방, 그 안방을 아들에게 강권했다. 그러고서 엄마는 문간방의 소파에서 잔다. 장사하느라 늦게 들어와 잠깐 눈 부쳤다가 또 일찍 나가는 생활이니 텔레비전이 바로 앞에 있겠다, 자기는 좋다고. 평생을 소파에서 자 버릇해 다른 데선 못 잔다고.

안방 차지한 아들은 편했을까? 킹 사이즈 침대에 편하게 누워 잤을까?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까만 봉다리들, 바닥에 널부러진 옷가지들, 일하기 몹시 불편할 것 같은 높이의 탁자에 놓인 노트북 등 신산스런 그의 방은 단지 정리를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가 임시 피난살이 하는 기분으로 그 방을 썼음을 웅변한다. 편치 않은 넓은 방, 안방.

엄마가 침대로 쓰던 소파를 아들 작업실 겸 응접실의 소파로 제 기능을 찾아주고 아들 침대를 방송사에서 선물해 근사하고 아담한 아들 침실 만들어 주고 나아가 “당신이 편해야 내가 편합니다(Si vales bene est, ego valeo)”라는 라틴어까지 들려 주며 설득해 엄마를 안방으로, 침대로 모신다. 그 프로는 왜 그렇게들 울고 짜고 하는지 짜증났는데 이 꼭지만큼은 눈물날 만 했다.

▲ 지난 5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에 방송인 유재환이 출연했다. (사진 = tvN '신박한 정리' 방송화면 캡처)

돈 벌어다 가족 먹여 살린다고 떵떵거리고 유세 떠는 것은 남성 가부장의 몫이었다. 이제 자기 유전자 후세에 남기느라 평생을 덫에 걸려 생계부양자(bread- winner)로 복무하지 않겠다는 남성들 많고 남에게 부양당하지 않고 고생스럽지만 자유롭게 살겠다는 여성들 많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이데올로기가 약화되고 노동시장이 젠더에 따라 파편화되어 있지 않다면 가족제도는 참으로 간당간당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세대, 여러 이유로 태반이 결혼하여 애 키우고 살았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한가. (독신이 아닌) 여성 지도자 한 명 나오려면 여성 조력자 두어명이 필요하다. 태반이 친정 엄마, 이모님이라 불리는 식구 같은 가사 도우미, 희귀하게는 시어머니 등등 여성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애 낳아 키우며 출세하는 여성 보지 못했다.

남편은 어디 있는가. 나에게도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이 절로 나올 때 남편은 대체로 어디에 있는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은 어디 있는가.

여행금지령을 외교부에서 내렸다. 그 외교부 수장의 남편이 그것을 무시하며 코로나 위험이 수위를 달리는 미국에 갔다. 그런데 그 여행은 수억원 짜리 요트를 사기 위한 것이다. 강경화 장관은 파장을 염려해 만류했으나 그는 자기 판단대로 움직였다. 이 정도가 팩트.

고가의 요트를 사겠다고? 빈부격차 없는 사회도 아니고 장관에 교수에, 물려받은 돈 없어도 스스로 벌어 그 정도 누릴 물질적 여유가 없으면 외려 이상하다. 왜 사위에게 빚을 지고 난린가.

한국 남자의 로망이 자동차에서 요트로 바뀔 때도 되었지, 우리 꽤 먹고 살잖아. 람보르기니보다 요트가 덜 속물적인 것도 같고. 요트 가진 한국인 생각보다 꽤 된다더만. 요트원정대라는 예능도 있어 나름 귀하신 몸 장기하와 진구도 볼 수 있고. 그러니 유난히 돌출되어 들리던 요트라는 단어는 그럭저럭 패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겠다고? 외교장관이 종신직도 아니고, 길어야 1~2년이면 끝나는데, 코로나가 다시 오고 또 다시 온들 그것도 1~2년이면 누그러질텐데, 적어도 여행금지령이 완화될만큼은 호전될텐데, 그 1~2년을 기약할 수 없는 짧은 시간 전망, 노년의 초조가 측은하다.

아내가 장관이면 장관이지 언제까지 남편이 자기 욕망 참고 살아야 하는데? 공직자의 배우자는 언제까지 ‘안사람’으로 죽어지내야 하는데? 아이고 참, 장관 정도의 고위 공직자 배우자와 직계 가족은 반절 공직자입니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있다. 강경화 장관의 배우자 이일병 전 교수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요트 구입및 여행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해 논란이 되고 있다./뉴시스

그들이 사회지도층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로비와 청탁의 타깃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랏일을 할 식구를 위해 사적인 개인으로서의 삶을 일부 희생할 용의가 있나, 공적 감시망 안에 있을텐가 물어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남자든 여자든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근래의 언론과 정치권은 얼마나 초극세사 도덕성을 자랑하는가. ‘그 남편’은 미국행을 단행하면서 아내가 치를 곤욕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순수한’ 영혼의 존재인가?

아들에 딸에 동생에 자 이제 남편 등장. 서일병에 이어 이일병이라, 굴러 들어온 호재라 난리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하다. 강경화 장관의 해명을 들으며 의원들이 웃고 말았다나? 동년배 남자의 행동이 자유로운 영혼의 돌출행동으로 귀여워 보였나?

이러고 보면 장관인 아내를 언론과 야권의 조리돌림 속에 내팽개치고 떠났다는 나의 분개는 얼마나 얼빠진 오바질이었나. 남성 동지들이 넘어가 줄 것이다라는 예상까지 깐 매우 예언자적인 행동일 수도.

가부장제(때문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다가 가부장제라(서 어쩔 수 없다)는 만능의 방패 뒤에 숨는 일은 좀 비겁하다. 강경화 장관은 철없는 남편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든 막강한 가부장의 권위에 진 것이든 장관으로서 주요 지침을 배우자가 정면으로 어긴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진지한 사과를 했으니 됐나 싶기도 한데 피해자 코스프레만은 안 보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 임기 내내 아내의 백화점 출입을 금지했다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남편 쪽의 청렴결백만 대단해 보였지 아내 쪽의 성숙한 지지와 사랑은 돌아보지 못했다. 은연중 부창부수 정도로 의미화했을까? 그것을 반성한다.

▲ 지난해 3월 29일 오후 경북 포항시 영일대해수욕장 앞 바다에서 열린 ‘제18회 해양경찰청장배 전국 요트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남성장관의 아내가 요트를 사러 미국에 갔다면 그것도 개인의 자유 운운 하며 옹호하겠는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 떠오르는 날이다. 요즘 보는 넷플릭스 드라마 Mrs. America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나와서 그런가?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김미영 칼럼니스트  mykim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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